잔차 라이프

잔차 위에서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이유 ...

navhawk 2006. 12. 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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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를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고등학교 때인가? 아마도 80년 아니면 81년 쯤에 로드싸이클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살던 부산의 초량동에서 태종대로 광안리로 종횡무진 잔차를 타고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그러다 태종대에서 돌아오던 길에 부둣길에서의 일이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때도
부산의 부둣길에는 자전거 전용차선이 따로 있었다. 거기를 신나게 달려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잠시 ... 아마도 몇 초도 걸리지 않은 잠시의 시간 동안 ... 고개를 숙였던 모양이다.
무엇엔가 심하게 부딪쳤다. 택시였다. 신차 출고한지 며칠되지 않는다던 노란색 포니2 택시.

삭신이 아팠다. 무엇보다도 안경에 눌려 찢어진 오른쪽 입술은 안팎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출고한지 며칠되지 않는다던 그 노란색 포니2 택시의
리어 컴비네이션이 깨져 있었다. 아뿔사 ...

내가 잘못한 걸 우짜노. 이 길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한테 쫓겨날 일 밖에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찾아 갔다. 택시 리어 컴비네이션 수리비로 현금 3만원을 택시운전기사에게
넘기고야 내 입술이 터져 너덜너덜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갔었다. 그리고는 아마도 밖으로 5방울 안으로 5방울 정도 기웠던거 같다.
그 상처는 아직도 자세히 보면 남아 있다.

몸이 아픈 것도 입술이 걸레가 되어서 기워져 있었던 것도 집안에서 야단을 맞았던 것도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어떠한 처벌이나 아픔 보다도 구겨진 로드싸이클의 림이
내평겨쳐진 채로 지하실 어느 구석으로 버려진 아픔이 더 컸었다고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추억할 꺼리도 있다. 할아버지와 제대로 나누지 못한 정리 ...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에 그런 일은 나름대로는 큰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아무런 말씀 없이 팔목을 잡고 병원으로 데려가시던 그 모습이 ... 참 ... 그런 일도 있었지.

그리고는 한동안 잔차를 못탔다. 몇달이 흐르고 상처도 점점 옅어져 갈 때. 지하실에 구겨진 채로
숨겨진 잔차를 찾았다. 잔차방에 가서 구겨진 림을 바꾸고 다시 타고 돌아다녔다.
철도 없었지 ... ㅎㅎㅎ

어쨌거나 ... 어쨌거나 ... 지금도 자전거를 타다가 힘들 때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이다가
깜짝깜짝 놀라 다시 고개를 곧추 세운다. 아주 오래 전의 그런 기억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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